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리 4세 (문단 편집) === 긍정적 평가 === 흔히 [[서양사]]에 관심이 있다면 자주 듣게되는 별명인 '''[[유럽]]의 [[중국]]'''을 만들어낸 왕이라고 할 수 있다. 물론 843년 [[베르됭 조약]] 이후 프랑스는 언제나 유럽을 대표하는 강대국이었고, 현재도 마찬가지이다. 그러나 앙리 4세 이전에는 [[앙주 가문#s-4|플랜태저넷 왕조 잉글랜드 왕국]], [[신성 로마 제국]], [[스페인 제국]] 등 분명 프랑스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높은 국력을 가진 상대가 존재했다. 그러다가 앙리 4세가 부르봉 왕조를 개창한 1589년부터 프랑스는 전 유럽이 한 편을 먹어야 겨우 상대가 되는 수준으로 그 위상이 올라갔고, 그 위상은 손자인 [[루이 14세]] 때까지 약 150년간 유지되었다. 앙리 4세는 정치와 군사 양면에서 모두 능란한 수완을 발휘했고, 그 수완에 걸맞는 업적을 세웠다. 주로 이 항목에서는 정치만 다뤄지는데, 그는 불리해보이는 여러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었고, 당대 최고의 명장인 [[스페인]]의 [[알레산드로 파르네세]]도 한 번 물 먹였을 만큼 군사쪽으로도 재능이 뛰어났다.[* 물론 파르네세는 그 전에 앙리 4세를 전략적으로 완전히 물 먹이고 파리를 수복한 바 있었다. 문제는 [[가톨릭]]의 삽질로 다시 전황이 앙리 4세측으로 기울어졌다는 것. 이에 파르네세는 다시 한 번 프랑스로 투입되었는데, 이번에는 단단히 대비하던 앙리 4세에 막혀 큰 성과없이 철수했으며,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.] 오죽하면 그 평가에 인색한 [[프랑스인]]들로부터 '''대왕'''의 칭호를 받았을까.[* 참고로 부르봉 왕조에서 앙리 4세와 함께 대왕의 칭호를 받은 [[루이 14세]]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절대권력 덕택으로 대왕의 칭호를 받았다. 앙리 4세가 그 능력에 대한 찬사의 의미로 대왕 칭호를 받은 것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